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(문단 편집) === 상세 ===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높이 9.8 cm, 지름 6 cm인 연적으로, 제작 시기는 아마도 고려청자 제작 기술이 절정을 이루었던 12세기 무렵일 것으로 추정한다. 본 연적은 일반적으로 고려청자 하면 떠오를 특유의 [[고려청자#s-2|비색]]과 은은하고 맑은 광택을 전체적으로 잘 보존하였고, 형상화한 어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의 형체가 뚜렷하고 사실적이며 정교하다. ||[[파일:국보270호청자모자원숭이모양연적뒷부분.jpg]]|| ||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뒷모습 || 본 연적의 사용법은 어미 원숭이 정수리 부분에 뚫려 있는 구멍(주입구)으로 물을 넣어 뱃속에 물을 담아두며, 물을 따를 때는 새끼 원숭이 머리에 작게 뚫린 배출구로 물을 따르는 방식이다. 이 구멍들을 막기 위한 마개는 따로 없는데, 원래 없던 것인지 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. 연적의 외형은 그야말로 원숭이 모자 그 자체인데, 새끼를 가슴팍에 안은 어미 원숭이를 형상화했다. 어미 원숭이는 쭈그려 앉아 두 팔로 새끼를 품고 있고, 새끼는 어미에 안겨서 양 손으로 어미를 밀면서 보채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순간적인 장면을 해학적으로 잘 포착함과 동시에 자애롭게 새끼를 품는 어미의 모습에서 모자간의 사랑이 드러난다고 평가받는다.[* 출처: [[http://kansong.org/collection/chungjawonsungi|간송미술문화재단 -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]],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166294&cid=40942&categoryId=33382|두산백과 -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]]] 원숭이들의 얼굴은 눈, 코, 입, 귀를 모두 잘 만들어놨고 어미의 눈, 코, 입과 새끼의 눈에는 짙은 철사(鐵砂) 안료를 찍어서 명확히 해놔 더욱 실감나게 조형됐다.[* 출처: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563730&cid=46657&categoryId=46657|한국민족문화대백과 -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]]] 또한 몸체는 간략하지만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는데, 두 원숭이의 손과 발에 음각으로 골을 파놔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. 특히 어미의 경우, 아랫배에 있는 배꼽과 쭈그려 앉느라 발목에 살이 접혀 주름이 잡힌 모습까지도 사실적으로 잘 포착해놨다. 또한 전체적으로 원숭이의 형상이 아주 사실적인데, 본래 한반도에는 원숭이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, 12세기 고려에 실제로 해외에서 수입된 원숭이가 있었으며 이를 본따 본 연적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.[* 출처: [[http://kansong.org/collection/chungjawonsungi|간송미술문화재단 -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]],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166294&cid=40942&categoryId=33382|두산백과 -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]]][*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에 서식하지 않은 동물인 [[청자 사자형뚜껑 향로|사자를 형상화한 청자]]의 경우 실제 [[사자]]와는 형태가 상당히 다르게 불교적으로 도식화된 형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, 원숭이가 고려시대에 수입됐고 이를 본따 본 연적을 만들었으리라는 추측에 힘이 실린다.]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에 대해 더 전해지는 자료는 없어 추정이지만, 1146년에 제작된 청자과형화병과 청자합과 유약 색이 동일하여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며,[* 출처: [[http://www.heritage.go.kr/heri/cul/culSelectDetail.do?VdkVgwKey=11,02700000,11&pageNo=1_1_1_0|문화재청 홈페이지 -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(靑磁 母子猿形 硯滴)]]] 또한 청자의 조형 수준이 높은 것으로 미루어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의 제작 시기는 고려청자 제작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12세기 중반일 것으로 추정한다. 또한 고려시대에 본 연적을 연적의 용도로 실제로 사용했는지 아니면 장식과 감상 용도의 사치품이었을지 알 수 없지만, 높은 제작 수준과 디자인 상의 세련됨을 보아서 최소한 고려 귀족 계층의 소유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. 이 뿐만 아니라 12세기 중반경에 오리, 복숭아, 거북, 동자 등의 소형의 상형 연적이 상당히 만들어졌는데,[* 출처: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563730&cid=46657&categoryId=46657|한국민족문화대백과 -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]]] 원숭이형은 그 예가 드물고 그 중에서도 모자로 된 형태는 본 연적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.[* 출처: [[http://www.heritage.go.kr/heri/cul/culSelectDetail.do?VdkVgwKey=11,02700000,11&pageNo=1_1_1_0|문화재청 홈페이지 -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(靑磁 母子猿形 硯滴)]]]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보존상태가 대단히 좋고, 그 높은 미적인 수준과 절정에 오른 고려의 청자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공예품으로서의 가치를 높게 인정 받아, 1992년 4월 20일 국보 제270호로 지정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